석정리

석정리 원석정(元石亭)

석정리원석정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순흥안씨가 최초로 입향했다고 하나 지금은 1호도 없고, 후에 전주리씨가 조선시대 때 피난 와 은신처로 삼다가 이곳에 정착하여 전주리씨촌을 이루었으나 약 80여 년 전부터는 여러 성씨가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본래 목포부 진례면의 지역으로서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는 석정(石井)으로 표기했으나 마을에 석산정(石山亭)이 있었으므로 "석정" 또는 "똘쟁이"라 하였는데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전부터 여기 마을명을 "석정(石亭)"이라고 하였고 학교면에 편입되었다.

석정리 화지(花枝)

석정리화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순흥안씨가 입향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1호도 없으며 그 후 제주양씨가 입향하여 현재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마을 주변에 화심(花心)이란 명당혈(明堂穴)이 있었는데 좌청룡(左靑龍)은 당상골, 우백호(右白虎)는 동백골이라 하여 동백꽃과 무성한 당산가지를 연관시킨데서 "화지(花枝)"라는 촌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1914년 이전에는 목포부 진례면에 속했었다.

석정리 건지(乾枝)

석정리건지

지금부터 200여 년 전이 되지 않을 때 이천서씨가 입향하여 이천서씨촌을 이루며 살았는데 50년 전부터 여러 성씨가 모여 함께 살고 있다.옛날에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물이 고갈된 관계로 땅이 메말라져서 심어져 있던 나무의 가지까지도 메말랐으며 모든 작물이 잘 되지를 않고 메말라 죽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지(乾枝)"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이전까지는 목포부 진례면에 속했었다.

석정리 흥룡(興龍)

석정리흥룡

이 마을에는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인동장씨가 입향하였는데 마을 뒤로 2개의 산봉우리가 만나고 있어 풍수지리상 겨울 북풍을 막고 남향이므로 이곳에 정착하였다. 이것이 마을형성의 출발이었으며 30년 전까지만 해도 인동장씨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지금은 기타 성씨도 함께 살고 있다. 약 350여 년 전 인동장씨가 입촌했고 마을 좌우측 산과 마을 뒤쪽으로 산이 마을을 싸고 있어 마을 입구에서 보면 용(龍)이 도사리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마을이 흥하게 될 것이라고 하여 마을명을 "흥룡(興龍)"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무안현 진례면 동림(東林)은 나오나 흥용은 없어 당시에는 동림마을으로 부른 것 같다. 현재 이웃마을인 동림 마을의 림(林)자를 붙여 흥림으로 부르기도 하여 위에 언급한 바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석정리 동림(東林)

석정리동림

이 마을은 300여 년 전 장흥고씨가 입향하였는데 지금도 장흥 고씨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기타 성씨가 모여 살아가고 있다. 옛날에 어떤 도사 한분이 영산강 줄기에 위치한 석관정이라는 곳에 나타나 사방을 둘러보고 현재의 이 마을에 도착하여 보니 석관정에서 본 바와 같이 동쪽의 나무와 터가 나무랄 데 없이 좋다 하여 "동림(東林)"이란 글자를 새겨놓은 후 배를 타고 사라진 다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그리하여 도사가 새겨놓은 글자가 마을 이름이 되었는데 석관정에서 보아 동쪽에 위치한 나무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마을명을 "동림(東林)"이라고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전에는 목포부 진례면에 속했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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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3-04-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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