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리 벽유(碧柳)
지명유래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학천 동쪽에 있는 적당뫼(笛峰)에서 신선이 한가하게 냇가의 푸른비들을 바라보며 피를 불고 있다는 뜻에서 "벽유동(碧柳洞)"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은 제일 먼저 풍산홍씨 한신(漢信)이 입향 정착하였다 한다.
유천리 학천(鶴川)
마을 앞에 있는 개울가에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이 버드나무에 수 십 마리의 학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았다하여 "학천(鶴川)"이라고 했다 하며 또 다른 지명은 "와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달성배씨 위(緯)가 1590년경에 입주 정착하였으며 현재도 그 후손이 주종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 뒤를 이어 김해김씨가 들어왔다.
유천리 미출(米出)
벽유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땅이 기름져서 쌀이 많이 난다고 하여 "쌀난곳" 즉 한문표기로 "米出"인데 쌀난곳의 발음이 변형되어 "사랑골"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도 마을 이름을 미출보다도 사랑골로 부르는 것이 쉽고, 알아듣는 사람도 더 많다. 이 마을은 400여 년 전에 한양조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했으며, 그 뒤 함양노씨가 입촌했다 한다. 지금은 함평, 대동, 손불면과의 경계지점이다.